'논고랑 기어가기'는 추석 전날 밤 진도에서 있었던 옛 아이들의 풍습이지요.
올벼를 베어낸 논에서 아이들이 발가벗고 나이 수만큼 논고랑을 기면 피부병을 예방하고 몸이 건강해진다고 믿었어요. 아이들의 건강과 땅을 함께 생각한 어른들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지요.
한지에 퍼지는 먹의 방향에 따라 자유롭게 그려낸 독특한 기법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과 함께 옛 아이들의 생생한 삶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야기 속으로...

"부스럼 때문에 의기소침한 기동이가 논바닥에 앉아있는 일남이를 보았어요.
일남이는 ‘발가벗고 논고랑을 기면 부스럼을 고칠 수 있다’는 할머니의 비법을 알려 주었어요.
일남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기동이도 달빛 아래 홀딱 벗고 논고랑을 기었어요.
부스럼이 나지도 않은 태수도 두 친구들과 함께 놀겠다고 옷을 홀딱 벗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들은 서로에게 진흙을 던져대며 끈적끈적한 논바닥에서 한바탕 진흙 놀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발가벗고 진흙을 참방참방 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미꾸라지를 잡고 노느라 부스럼도, 논고랑을 기던 것도 어느새 다 잊어버리지요.“

부스럼은 지금은 (많지도 않을뿐더러) 별 것 아닌 것 피부병으로 여겨지지만, 옛날에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갔던 무서운 병이었다. 비록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부스럼을 예방하기 위한 풍속이 전국적으로 혹은, 지역별로 다양하게 생겨야 했을 만큼 부스럼의 위력을 대단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풍속 중에는 전국적으로 대보름에 행해지는 ‘부럼’ 까먹기가 있다.
대보름날 까먹는 밤, 잣, 호두, 땅콩 등을 ‘부럼’이라고 하는데, 이날 새벽에 부름을 까먹고 깍지를 버리면 그 한 해 동안은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부럼’은 부스럼에서 온 말이다.
이 밖에 들이나 길가에 흔히 자라는 질경이의 잎을 이용한 치료법 등 부스럼을 치료하기 위한 민간요법이 여러 가지 있다.
남해의 섬 진도에서는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부스럼을 치료하였다.
옛날 진도 사람들은 논의 흙을 온 몸에(또는 부스럼 난 곳에) 발라 부스럼을 치료했는데, 단순히 바르는 동작대신 아이들에게 발가벗고 나이 수만큼 논고랑을 기게 했다.
아이들은 놀이삼아 진흙 위를 기면서 자연스럽게 부스럼을 치료할 수 있었다.
진도의 논은 갯벌을 간척하여 만들어진 논으로 일반적인 육지의 논과 흙의 성질과 성분에 차이가 있다. 진도의 논흙이 다른 곳에 비해 더 기름지고 차지기 때문에 유독 진도에서 “논고랑 기어가기”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개펄마사지나 머드팩이 피부 건강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진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생활 속에서 이미 실천되고 있었던 민간 요법이었던 걸 보면 다시 한번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느낄 수 있다.
 
맛보기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옷을 홀딱 벗고 논고랑을 기면 부스럼이 없어진대."
"체, 거짓말."
"정말이야. 우리 형도 그렇게 해서 부스럼 고쳤는 걸"
 
발가벗은 기동이와 일남이가 논바닥에 엎드렸어요.
진흙이 맨몸에 닿자 기동이가 차갑다며 엄살을 떨었어요.
"한 고랑만 기면 금세 괜찮을 거야."
 
어느새 진흙범벅이 된 아이들은 모두 한데 어울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밀었다 당겼다, 미끌미끌 끈적끈적한 논바닥에서 흥겹게 춤을 추었어요.